디지털장의사

SNS 추모 계정,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scino 2025. 8. 4. 20:29

 

사망자의 SNS 계정을 삭제하지 않고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유족이 유지하는 현상은 디지털 사회에서 새로운 추모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SNS라는 공간이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공유하는 창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감정적 위로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모 계정이 진정으로 고인을 위한 것인지, 혹은 남은 자들의 위로를 위한 장치인지에 대한 물음도 점차 늘고 있다. 더불어, 해당 계정의 유지 및 관리 권한, 프라이버시, 고인의 의사에 대한 존중 여부 등 여러 윤리적·법적 쟁점도 대두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SNS 추모 계정의 등장 배경과 기능, 그리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논란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뤄본다.

SNS 추모 계정을 기념공간처럼 활용하는 모습을 묘사한 일러스트

디지털 공간에 남은 그들의 흔적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목소리이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바로 SNS 계정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물리적 이별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SNS 속 고인의 흔적은 죽은 이와 산 자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기억의 장소를 형성한다. 생전에 남긴 게시물, 댓글, 사진, 메시지는 사망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고인을 기억하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주요 SNS는 사용자가 사망했을 경우 계정을 ‘기념 계정(Memorial Account)’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 기능은 고인의 계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타인의 로그인은 차단하고, 프로필에 ‘기억하는 공간’이라는 문구를 덧붙인다. 댓글이나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사망자 계정이 ‘디지털 제단’처럼 기능하도록 돕는다. 이처럼 SNS 추모 계정은 남겨진 이들에게 위로와 연결을 제공하는 동시에, 고인의 존재가 계속 기억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경우, 유족이나 친구들은 고인의 마지막 기록을 통해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표현하며, 상실의 슬픔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 디지털 기억의 공간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질문을 남긴다. 과연 고인은 자신의 계정이 죽은 뒤에도 유지되길 원했을까? 그 계정에 담긴 사진, 게시물, 메시지는 모두 공유되어도 괜찮은가? SNS 추모 계정은 고인을 기리는 공간인가, 아니면 산 자들의 감정을 위로하기 위한 장치인가? 이러한 고민은 이제 디지털 사회가 풀어야 할 새로운 윤리적 과제가 되었다.

SNS 추모 계정의 운영과 윤리적 문제

SNS 추모 계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표적인 플랫폼인 페이스북의 경우, 사용자가 생전에 ‘계정 관리인’을 지정해 두면 사망 이후 그 관리인이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삭제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은 유족이 사망증명서나 관계를 증빙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추모 계정으로 전환해주며, 트위터는 사망자 계정을 삭제하는 방식만 허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계정 운영의 주체가 사망자가 아닌 유족이라는 점에 있다. 유족이 고인의 동의 없이 계정을 보존하거나 삭제하면서, 고인의 프라이버시나 의사가 무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고인이 생전에 어떤 민감한 게시물을 비공개로 설정했거나, 향후 자동 삭제를 원했을 경우, 유족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공개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고인의 ‘사후 사생활권’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충돌한다. 또한 추모 계정이 지나치게 공적인 공간으로 변질되는 문제도 있다. 일부 경우, 유족이 고인의 계정을 통해 마케팅을 하거나 사적인 메시지를 공개하며 ‘사망자 계정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제3자가 감정적 상처를 입거나,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유명인의 경우, 추모 계정이 팬덤 간 갈등의 중심이 되거나, 상업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심리학적으로도 추모 계정은 복합적 영향을 미친다. 유족에게는 상실을 극복하는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리움을 계속 자극해 슬픔을 길게 끌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디지털 애도’의 시간이 지나치게 장기화될 경우, 현실과의 단절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SNS 추모 계정의 운영은 단순히 계정을 보존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권한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기억을 둘러싼 권리와 선택

SNS 추모 계정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애도 방식이자, 기술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단지 기능적 장치가 아니라, 기억과 존재, 상실과 위로의 경계에 서 있는 이 계정들은 인간의 감정과 기술의 만남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고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생전에 계정의 사후 처리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플랫폼 역시 추모 계정 전환 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하고, 사생활 보호와 접근 권한에 대한 명확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유족 입장에서도 감정적 위로와 존중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고인의 흔적을 유지하는 것이 위안이 되지만, 그 위안이 고인을 도구화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애도는 물리적 제사보다 덜 형식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SNS 추모 계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살아 있는 이들의 위로인지, 고인을 위한 기억인지, 혹은 그 둘의 조화를 추구할 것인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논의해야 할 과제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삶의 끝이라 보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애도는 연결의 방식과 기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이에 걸맞은 제도와 인식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