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장의사

사망 이후의 디지털 데이터, 유족의 접근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scino 2025. 8. 13. 08:07

사망자의 데이터 접근을 고민하는 디지털 장의사의 이미지

남겨진 데이터, 누구의 것인가? 고인의 계정에 손을 대는 순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람이 남긴 것은 이제 더 이상 서류나 유산 목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복잡하고 내밀한 유산은 디지털 공간 속에 저장되어 있다. 이메일 계정에 남겨진 메일, 클라우드에 보관된 사진과 동영상, SNS에 적힌 게시물과 메시지. 이 모든 데이터는 살아 있을 때의 개인의 취향, 감정, 관계, 사생활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죽은 이후’에도 남아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정보에 대한 접근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유족들이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법적·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고인의 메신저 내용을 볼 수 있을까요?”, “이메일에 중요한 계약 문서가 있을 수 있어요.” “사진을 백업하고 싶은데, 비밀번호를 모르겠어요.” 이러한 요청은 디지털 장의사의 일선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황 중 하나다. 하지만 디지털 기록은 대부분 플랫폼 회사가 보유한 서비스 약관과 해당 국가의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관리된다. 사망자의 정보 접근을 금지하거나, 명확한 법적 위임장이 있어야만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네이버 등 각 기업은 사후 정책을 따로 두고 있지만, 이 역시 지역별 법 체계에 따라 적용 범위가 다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제한 속에서 유족의 요청을 받을 때, 단순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불가능하다’를 넘어서, 그 요청의 정당성과 감정적 무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고인이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계정 열람을 허용할 수 있는가? 고인의 사적인 기록을 유족이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보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이 글에서는 사망 이후 유족이 디지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해 단순한 기술적 접근 가능성을 넘어서 법률적 경계, 윤리적 책임, 감정적 현실 사이에서 디지털 장의사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정리한다. 이 주제는 이제 더 이상 IT 문제나 보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생활, 그리고 기억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매우 본질적인 물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1. 법적 소유권과 접근권의 간극: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디지털 데이터는 물리적 유산과 달리 소유권과 접근권이 명확하게 분리된다. 예컨대 고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가족이 소유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저장된 클라우드 연동 데이터나 메일 서버의 접근 권한은 계정 서비스 제공자에게 위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즉, ‘기기’는 유족의 소유일 수 있어도, ‘데이터’는 여전히 플랫폼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적으로는 접근 가능한 기록일지라도, 법적으로는 명백한 위임이나 사망자의 동의 없이는 유족에게 열람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사망자 계정 접근을 위해 법원 명령서를 요구하며, 구글은 ‘Inactive Account Manager’를 사전에 설정해 두지 않으면 계정 전송을 거부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유족에게 지나치게 복잡하고 감정적으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때 유족의 요청을 접수하는 동시에, 플랫폼의 정책, 국가별 개인정보 보호법, 상속 관련 민법 등을 적절히 검토해야 하는 실무적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족 간의 의견 불일치도 자주 발생한다. 형제 중 한 명은 모든 기록을 열람하길 원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건 사생활 침해’라며 반대하기도 한다. 이때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히 법적 문서를 요구하기보다, 기억과 감정 사이의 중재자로서 접근이 아닌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해결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즉,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 문제는 단순한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고인의 정체성을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열어볼 수 있느냐는 사회적·도덕적 질문이자 디지털 장의사에게 있어 ‘공감의 기술’이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2. 사생활 보호와 가족 권리 사이의 윤리적 경계

사망자의 디지털 기록은 본질적으로 고인의 사생활이 담긴 영역이다. 그리고 사생활은 죽음 이후에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국제적 개인정보보호 논의의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복잡하다. 특히 가족, 특히 직계 유족은 ‘정서적 상속’이라는 이름으로 고인의 기록을 열람하길 원한다. 이때 디지털 장의사는 도덕적으로 깊은 갈등에 놓이게 된다. “자녀로서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요청은 당연히 이해되지만, 고인이 생전에 그 정보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즉, 감정적으로는 공감되지만, 사생활 보호라는 윤리 기준에서는 모순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유족의 접근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독일은 가족이 이메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판결한 적이 있으나, 이는 민법상 상속 개념에 포함되었을 뿐, 고인의 ‘사적인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또한 유족이 열람한 정보로 인해 오히려 고인에 대한 오해가 생기거나, 가족 간 갈등이 생기는 사례도 많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러한 민감한 경계에서 기록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거나, 열람 대상과 방식을 조율하는 ‘정서적 설계자’로 기능해야 한다. 공개 대신 ‘보존’, 열람 대신 ‘유예’, 전체가 아닌 ‘부분 복사’와 같은 완충적 절차를 제안하는 것도 이 직무의 일부다. 결국 윤리적 접근권의 경계는 누구의 감정이 정당한가가 아니라, 누구의 존엄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기술을 넘어선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3. 접근 요청이 감정적 위협이 될 때: 실무자의 감정중재 기술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에서 유족의 접근 요청은 항상 합리적이거나 차분한 형태로 오지 않는다. 때로는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쥐고자 하는 절박함, 분노, 미련, 심지어 복수심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접근 권한’이라는 말 안에 담기지 않는다. 예컨대 부부 관계였던 유족이 고인의 메시지 기록을 통해 불륜 여부를 확인하려 하거나, 자녀가 고인의 재산 흐름을 조사하려는 목적으로 이메일 기록 열람을 요청하는 경우, 그 목적은 이미 사생활 보호의 선을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처럼 감정적으로 격해진 요청을 받았을 때, 단순히 ‘규정 위반’이라고 거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 요청이 갖는 감정의 결을 파악하고, 다른 방식의 정리나 정서적 마무리 방식을 제안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 조절과 말의 온도다. 예를 들어 “지금은 열람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정서가 정리된 후, 다시 결정하실 수 있도록 보관해드리겠습니다.” 와 같은 문장은, 감정적 중재를 위한 실무적 언어다. 이런 언어가 쌓일수록 유족은 비로소 ‘접근’이 아니라 ‘배려’를 느끼게 된다. 디지털 장의사는 고인의 데이터가 유족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때로는 고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 요청을 유예하거나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기술적 근거보다 더 설득력 있는 ‘감정적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접근 권한은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과 윤리, 기억과 존엄 사이의 균형이다. 그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디지털 장의사다.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기억은 누구의 권한인가

사망 이후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은 이제 단순히 계정을 여는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고인의 삶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며,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 민감한 결정 앞에서 늘 중립이 아니라 ‘사람 편’에 서야 한다. 법은 일정 기준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예외와 맥락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정보보다 기억이 중요하고, 기억보다 존엄이 우선인 경우도 있다. 접근권은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다. 그 간극을 메우는 사람,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 그리고 때로는 ‘아니오’라는 말을 통해 고인을 지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디지털 장의사다. 기억을 지키는 일은 정보를 열람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그 복잡함을 감내하며 사람의 마지막 흔적을 다루는 손길이 있기에, 디지털 죽음은 단순한 정리가 아닌 인간적인 마무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