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장의사

디지털 유산: 사진, 영상, 문서의 법적 처리 방법

scino 2025. 7. 26. 09:54

디지털 유산의 법적 처리 절차를 고민하는 유족

사망 이후 남겨진 사진, 영상, 문서 등과 같은 디지털 자료는 고인의 삶을 반영하는 유산이자 유족에게는 정리해야 할 법적 자산이다. 그러나 현행법은 디지털 콘텐츠의 상속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실무에서는 혼란이 적지 않다. 이 글에서는 고인의 디지털 콘텐츠가 법적으로 어떤 자산에 해당하며, 이를 누가 어떻게 상속받을 수 있는지, 실제 처리 절차는 무엇인지 전문가 시선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디지털 유산은 유산이 맞는가?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람의 집이나 은행 계좌는 당연히 상속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의 컴퓨터에 저장된 가족 사진, 이메일 첨부파일 속 중요한 계약서, 또는 구글 드라이브에 남겨둔 회고록 원고가 있다면, 이 또한 유산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과거에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이 질문이, 이제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성하고 저장하는 사진, 영상, 텍스트 문서, 이메일, 클라우드 자료 등과 같은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는 고인의 사생활과 기억을 담고 있음은 물론이고, 때로는 실질적인 금전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진이나 동영상은 가족에게 정서적 자산으로, 문서나 노트는 출판물 또는 연구 성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디지털 콘텐츠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던 고인의 경우에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명확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디지털 자산에 대한 법적 해석과 처리 기준은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영역이 많다. 일부는 무형 자산으로 분류되어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소유권이 플랫폼에 귀속되어 유족이 접근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반대로 고인의 명의로 남겨진 계정과 콘텐츠가 유족 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고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중요한 디지털 기록이 방치되거나, 무단으로 삭제되거나, 심지어 제3자에 의해 악용되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디지털 콘텐츠도 하나의 유산으로 보고, 그 법적 지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디지털 자료의 법적 성격과 처리 절차

디지털 콘텐츠가 상속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첫째는 소유권 또는 사용권이 고인에게 귀속되어야 하며, 둘째는 법률상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인이 촬영한 사진이나 직접 작성한 문서 파일, 혹은 본인이 소유한 클라우드 계정 내 데이터는 원칙적으로 유산에 포함된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대여한 영상, 플랫폼에서 일시적으로 이용한 콘텐츠, 또는 타인의 저작물이 포함된 파일 등은 소유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상속 대상이 되기 어렵다. 현행 민법에는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나 유사 사례에서 일정한 방향성이 제시되고 있다. 예컨대 유족이 고인의 PC를 통해 사진 파일을 복원하거나, 구글 드라이브나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된 문서를 다운로드받기 위해 법원의 승인을 받은 사례도 있으며, 일부는 유언장의 첨부 항목으로 디지털 콘텐츠 목록을 지정해 효력을 인정받은 경우도 있다.

 

실제 처리 절차는 다음과 같다. 유족이 고인의 사망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본인 신분증 등을 준비한 뒤, 각 플랫폼의 고객센터나 관련 기관에 신청한다. 구글의 경우, '데이터 다운로드 요청'이 가능한 항목에 대해 특정 승인 절차를 거쳐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으며, 애플은 '디지털 유산 연락처' 기능을 통해 생전에 지정된 사람에게 계정 접근 권한을 부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능을 생전에 설정하지 않은 경우, 유족의 요청만으로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 국내법에 따라, 사망자의 개인정보도 일정 기간 보호 대상으로 간주되며, 명시적인 동의 없이 유족이 데이터를 열람하는 것은 위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유족 입장에서는 법원의 명령이나 공공기관의 협조 없이 단독으로 고인의 자료를 열람하거나 삭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법적 공백은 결국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생전의 명확한 의사 표시'가 없다면, 유족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디지털 콘텐츠의 법적 지위를 정립해야 할 때

디지털 유산의 법적 처리는 단순히 자료를 전달하거나 삭제하는 기술적 절차를 넘어서, 고인의 권리와 유족의 권리를 동시에 보호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관련 법령의 정비다. 현재 민법이나 상속법에는 '디지털 자산'이나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처리 기준이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고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족이 접근조차 할 수 없거나, 반대로 개인정보가 무단 열람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콘텐츠는 이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경우에 따라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자산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관련 법령에는 디지털 유산의 정의, 상속 대상 기준, 유족의 접근 범위, 처리 절차, 생전 설정의 효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더불어 유언장의 표준 양식에도 '디지털 콘텐츠' 항목을 추가하고, 공증 절차나 디지털 유언장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제공하는 등의 실질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도 스스로의 디지털 유산을 정리할 책임이 있다. 생전에 중요한 자료의 목록을 정리하고, 주요 계정에 대한 접근 권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유언장에 명시하거나, 구글·애플 등에서 제공하는 '사후 계정 설정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이나 가족 영상, 중요한 업무 문서 등은 사망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자산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삶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온라인 공간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맞춰 법과 제도가 함께 진화하지 않으면, 죽음 이후의 정리 또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디지털 콘텐츠를 진정한 유산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호하고 상속하는 법적 기반을 구축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