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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록 보존과 수사 절차의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 이미지

고인의 디지털 기록, 무조건 삭제해도 될까?

디지털 장의사라는 말을 들으면 고인이 남긴 SNS 계정이나 게시물, 사진, 온라인 기록을 정리하거나 삭제해 주는 일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디지털 기록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망 경위와 관련해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범죄와 관련된 자료일 가능성이 있다면 스마트폰의 메시지, 이메일, 사진, 파일, 접속 기록 등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디지털 장의사가 어떤 자료가 증거인지 직접 판단하는 수사 전문가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수사와 관련될 가능성을 알게 된 상황이라면 섣불리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필요한 법적 절차를 확인할 때까지 작업을 멈추는 것이 안전하다.

1. 디지털 장의사는 사이버 수사관이 아니다

먼저 디지털 기록을 정리하는 민간 서비스와 형사사건에서 디지털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수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범죄수사를 위한 압수·수색에 법적 절차를 요구하고 있으며, 전자정보가 저장된 컴퓨터나 저장매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도 사건과 관련된 범위를 정해 정보를 출력하거나 복제해 제출받는 방식 등이 규정돼 있다. 따라서 민간 서비스업자가 단순히 유족에게 의뢰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고인의 모든 기기와 계정을 자유롭게 조사하거나 수사기관을 대신해 증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계정에 접근할 권한이 있는지, 기기나 데이터의 소유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해당 플랫폼의 사후 계정 정책은 무엇인지도 각각 다를 수 있다. 유족에게 정리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과 특정 데이터에 접근하거나 변경할 법적 권한이 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디지털 기록을 다루는 과정에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보다 먼저 누가 어떤 권한으로 작업을 요청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2. 디지털 증거에서는 왜 '그대로 두는 것'이 중요할까?

디지털 정보는 종이 문서와 다른 특징이 있다. 파일을 열거나 이동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도 기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원래 상태와 처리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디지털 포렌식을 데이터를 식별하고 수집·검사·분석하면서 정보의 무결성을 보존하고 관리 과정을 유지하는 절차로 설명한다. 결국 디지털 자료가 향후 증거로 검토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자료의 원래 상태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명확하게 인지한 상황에서 임의로 파일을 삭제하거나 이름을 변경하고, 복구 프로그램을 실행하거나 자료를 편집하는 행동은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여기서 핵심은 민간 업체가 직접 포렌식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역할과 권한을 넘어서는 작업을 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관계 기관이나 법률 전문가에게 다음 절차를 확인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3. '증거가 될 것 같다'고 민간 업체가 판단하면 될까?

이 부분 역시 조심해야 한다. 메시지 내용이 수상해 보인다거나 검색 기록이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업체가 범죄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가족 간 다툼이 담긴 대화나 개인적인 검색 기록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형사사건의 증거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적인 기록을 과도하게 열람하는 것은 개인정보와 사생활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대신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수사기관에서 자료 보존이나 제출과 관련한 연락을 받은 경우, 또는 의뢰 과정에서 해당 데이터가 형사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라면 삭제 작업을 중단하고 정식 절차를 확인하는 방향이 합리적이다. 형법에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는 행위에 관한 규정도 있다. 다만 특정 파일을 삭제했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이 조항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 판단은 사건의 상황과 행위자의 인식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4. 삭제 요청을 받았을 때 먼저 확인해야 할 것

고인의 디지털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삭제할 수 있는가'보다 먼저 '지금 삭제해도 되는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특히 아래와 같은 상황이라면 바로 삭제하기보다 작업을 멈추고 필요한 절차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 현재 사망과 관련한 경찰 수사나 형사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 수사기관으로부터 기기나 데이터와 관련한 요청을 받은 경우
  • 의뢰인이 해당 계정이나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불분명한 경우
  • 가족이나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데이터 소유와 삭제 여부를 두고 분쟁이 있는 경우
  • 특정 자료가 이미 형사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반대로 단순히 내용이 이상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민간 서비스업자가 모든 데이터를 보존하고 조사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지나친 열람이나 복사 역시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민간 업체가 수사기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범위와 멈춰야 할 시점을 구분하는 것이다.

5. 기록을 직접 조사하기보다 작업 범위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기록 정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중요한 것은 수사관처럼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의뢰를 받고 어떤 작업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남기는 일이다. 어떤 계정의 정리를 요청받았는지, 의뢰인의 권한을 어떻게 확인했는지, 실제로 어떤 작업을 수행했는지, 작업을 중단한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등을 기록해 두는 방식이다. 특히 수사 가능성을 알게 된 이후에는 필요 이상의 접근이나 변경을 피하고 수사기관 또는 법률 전문가를 통해 다음 절차를 확인하는 편이 낫다.

디지털 기록은 쉽게 복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상태와 처리 과정이 중요한 데이터라면 무심코 한 작업 하나가 이후 확인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잘 다루는 기술만큼이나 작업 범위를 정하고 그 범위를 넘어가지 않는 절차가 중요하다.

디지털 장의사와 사이버 수사의 경계가 중요한 이유

디지털 장의사와 사이버 수사관을 같은 목적을 가진 직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쪽은 의뢰받은 온라인 기록의 정리를 돕는 민간 서비스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법적 권한과 절차에 따라 범죄 관련 전자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수사 영역이다. 다만 이미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고인의 기록을 임의로 삭제한다면 이후 자료 확인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두 영역이 맞닿는 순간에는 훨씬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 글을 다시 정리하면서 오히려 중요한 건 '디지털 장의사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의 기록은 유족에게는 추억이고 플랫폼에는 계정 정보이며, 어떤 상황에서는 법적 확인이 필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삭제 기술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누가 어떤 권한으로 이 작업을 요청했는지, 지금 이 자료를 건드려도 되는지다. 모르는 영역에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멈추는 것, 그것 역시 디지털 기록을 다루는 사람에게 필요한 전문성이라고 본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내용이며 실제 수사나 법적 분쟁과 관련된 데이터라면 임의로 삭제하거나 변경하기 전에 관계 기관이나 법률 전문가에게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참고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 형사소송법 제106조(압수)
https://www.law.go.kr/

국가법령정보센터 - 형사소송법 제215조(압수·수색·검증)
https://www.law.go.kr/

국가법령정보센터 - 형법 제155조(증거인멸 등)
https://www.law.go.kr/

NIST - Digital Evidence Preservation: Considerations for Evidence Handlers
https://www.nist.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