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룬다는 이유로, 차갑게 오해받는 사람들
“그 일, 좀 찜찜하지 않아요?”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을 소개하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죽음 이후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직업, 즉 사망자의 이메일, SNS, 클라우드 계정 등을 유족의 요청에 따라 정리하고 삭제하는 일을 한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호기심 반, 불편함 반의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 속에는 아직 사회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죽음 이후의 디지털 공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지가 함께 들어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늘 편견과 마주한다. 가장 흔한 오해는 ‘죽음을 돈벌이로 삼는다’는 시선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회로 삼아 계정을 정리해주는 일을 냉혈한처럼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로 돈을 받아요?”라는 말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아직 이 직업을 ‘공감의 직업’이 아닌 ‘기술 서비스’로 여긴다는 반증이다.
또 다른 편견은 디지털 장의사를 단순한 계정 정리 기술자쯤으로 본다는 것이다. 고인이 남긴 계정들을 목록화하고 삭제만 해주는 사람, 마치 키보드 몇 번 두드려 끝나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실제로 디지털 장의사가 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유족 간 갈등을 중재하고, 삭제 여부에 대한 법적 판단과 윤리적 기준을 고려하며, 감정적으로 극단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고도의 감정노동이 포함된 전문직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장의사는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견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직업적 정체성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디지털 장의사를 ‘죽음을 다루는 냉정한 사람’으로 보거나, ‘슬픔에 개입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죽음 앞에서 조심스럽고, 진심으로 사람의 감정을 대하는 이들이 바로 디지털 장의사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장의사가 겪는 사회적 오해와 편견을 살펴보고, 그 원인과 배경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 그리고 이 직업이 왜 전문성과 공감을 동시에 요구하는 중요한 직업인지를 짚어본다.
1. ‘죽음을 돈벌이로 삼는다’는 편견과의 싸움
디지털 장의사를 가장 흔하게 오해하는 방식 중 하나는 그들이 ‘죽음을 수단화’한다는 시선이다. 사망 직후 연락이 오고, 유족의 요청에 따라 계정 삭제와 데이터 정리를 수행한다는 업무 구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이 직업을 “죽음을 돈벌이로 활용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오해는 장례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부정적 인식과 연결되며, 죽음 관련 직종이 ‘냉정하다’, ‘비윤리적이다’라는 고정관념과 맞물린다. 하지만 실제로 디지털 장의사의 업무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이 아니다. 죽음 이후 남겨진 디지털 자산은 개인의 사적 기록이며, 그 속에는 감정, 인간관계, 생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삭제하거나 정리하는 과정은 고인의 존엄을 지키고, 유족의 심리적 정리를 돕는 감정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 시간, 판단, 윤리적 기준,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공감능력이 요구된다. 실제 현장에서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히 ‘요청받은 계정을 삭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유족 간 입장이 엇갈릴 경우 중립적으로 조율해야 하고, 사망자의 생전 의사와 충돌할 경우 작업을 중단하거나 보류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익보다 윤리를 우선시하는 상황이 훨씬 많음에도, 디지털 장의사는 여전히 ‘죽음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시선과 맞서야 한다. 이 편견은 사회적 교육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히 새로운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이 불편해 보이는 건, 죽음이라는 주제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2. ‘기계처럼 계정만 지운다’는 기술자 취급
또 다른 흔한 오해는 디지털 장의사를 ‘기계적 삭제 담당자’로 보는 시선이다. “그냥 계정 몇 개 지우는 건데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이런 반응은 디지털 장의사의 실제 업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고인의 삶을 구성하는 기억과 흔적의 집합이다. 이를 정리하는 과정은 절대 자동화될 수 없는, 철저히 사람 중심의 판단이 개입된 행위다. 예를 들어, 삭제 요청이 들어온 계정이 고인이 생전에 남긴 유언장과 상충할 경우,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히 요청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계정의 정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유족과 소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삭제를 거부하거나 유예 기간을 두는 선택도 한다. 즉, 이 직업은 ‘삭제’보다 ‘판단’에 가까운 고차원적 실무다. 또한 감정의 조율도 중요하다. 삭제 요청을 한 유족이 작업 중간에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삭제를 철회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때 단순 작업자가 아니라, 심리적 조율자이자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기술적 스킬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디지털 청소부’처럼 취급하거나 ‘고인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이라는 차가운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사회 인식은 디지털 장의사들에게 감정적 소진과 정체성 혼란을 불러온다. 기술자도 아니고 상담자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여겨지면서, 그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이 직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3. 편견을 넘어서, 자신을 지키는 디지털 장의사의 전략
이 모든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디지털 장의사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굳건히 세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중요한 것은 ‘이 직업은 감정노동을 포함한 전문직’이라는 자각이다. 스스로를 ‘데이터 삭제자’가 아니라,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로 인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의뢰인과의 신뢰 관계 구축이다. 첫 상담에서부터 자신의 역할, 한계, 윤리 기준을 명확히 전달함으로써 신뢰를 확보하고, 스스로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내부 프로토콜을 마련하고, 작업 기준을 문서화해 업무가 개인 감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장의사 커뮤니티나 동료와의 네트워크도 도움이 된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겪는 감정, 편견, 윤리적 갈등을 공유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줄이고, 전문성에 대한 확신을 강화할 수 있다. 심리적 방어 기제와 감정 회복 기술을 갖추는 것도 편견과 외부 평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장의사 스스로 사회에 이 직업의 진정한 의미를 알리기 위한 시도도 필요하다. 칼럼 작성, 강연, SNS 홍보, 사례 공유 등을 통해 대중이 이 직업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죽음을 다룬다는 이유로 차가운 시선을 받는 현실을 따뜻한 언어와 전문적 태도로 돌파할 수 있다면, 디지털 장의사는 결국 사회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직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오해 속에서도 사람을 지킨다
디지털 장의사는 단순히 죽음을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을 정리하고, 죽은 이의 흔적을 존중하며, 무엇보다 ‘기억’을 다룬다. 그러나 그 일이 아직 사회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수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일해야 한다. 죽음을 다룬다는 이유로 차가워 보이고, 기술과 감정을 모두 다뤄야 한다는 이유로 어중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업무는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깊이와 무게를 가진다. 그 속에서 자신의 윤리 기준을 지키고, 감정을 조율하며, 때로는 오해 속에서 침묵하는 이들의 존재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보이지 않는 전문가’다.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 장의사는 그 편견 속에서도 사람을 대하고, 기억을 다루며, 감정을 존중한다. 이 글이 그들의 진짜 역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디지털 장의사는 데이터를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을 정리하고, 감정을 존중하며,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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