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아이들에게도 식물성 단백질은 익숙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식품 매대에서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체육’이라는 단어.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대체육은 과연 법적으로 ‘고기’로 분류될 수 있을까? 외형도 비슷하고, 조리법도 같고, 때로는 맛까지 유사하지만 식품 규정과 유통 기준, 라벨링 지침 안에서는 이 단어가 가진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특히 최근에는 ‘고기’라는 표현을 대체육 제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반대로 명확히 구분하라는 목소리가 각국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권리, 산업의 방향, 그리고 식품 규제 체계 전체에 영향을 주는 논쟁이다. 이 글에서는 대체육이 법적·제도적으로 어떻게 다뤄지고 있으며, 왜 이 정의가 앞으로의 식문화와 시장을 바꾸는 열쇠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고기와 비고기 사이,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고기’라는 단어는 일상어로는 단순하지만, 식품 법령 안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함의를 가진다. 많은 나라에서 ‘고기’는 동물성 조직, 즉 실제 도축된 가축에서 얻은 근육성 조직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식물성 단백질이나 배양 세포로 만든 고기 유사물은 고기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는 대체육을 고기처럼 굽고, 볶고, 튀긴다. 외형과 사용법이 거의 같기 때문에 소비자의 인식은 ‘고기처럼 쓰이니까 고기’에 가깝다. 이 간극이 바로 규제와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식물성 고기 vs 배양육, 법적 다름
대체육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식물성 고기는 콩, 완두콩, 곡물 등의 식물성 단백질을 가공해 식감과 풍미를 고기처럼 만든 것이고, 배양육은 동물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실제 근육’에 가깝다. 하지만 두 제품 모두 고기의 외형과 조리법을 따르고 있어서 규제당국은 소비자 혼란 방지를 위해 표시하는 기준을 따로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 일부 국가는 ‘식물성 소시지’나 ‘식물성 햄버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미국 일부 주에서는 ‘고기’라는 단어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왜 이 문제가 중요한가? 소비자 보호와 시장의 갈림길
단순히 ‘단어’를 둘러싼 논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문제는 결국 소비자의 알 권리와 시장 경쟁의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전통 축산업계는 “소비자가 혼동할 수 있다”며 규제를 요구하고 있고, 대체육 제조사는 “실제로 고기를 대체할 수 있으니 고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정보 전달을 원한다면 ‘비건’이나 ‘식물성’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 있고,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서는 유사 표현이 오히려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이처럼 정의 하나가 바뀌면, 포장지부터 광고, 식당 메뉴판까지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 어떤 입장인가?
한국은 현재 ‘고기’라는 표현을 식물성 제품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명확한 규제는 없지만, 점차 대체육이 많이 대중화되면서 식약처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논의 중이다. 2025년 하반기 식품표시법 개정에 맞춰 ‘유사 식품 표시 기준’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고기’라는 표현을 식물성 제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된다면, 많은 대체육 스타트업의 마케팅 전략이 수정될 수밖에 없고, 브랜드 이미지 자체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 정의를 유연하게 가져간다면, 국내 대체육 시장은 더 빠르게 대중화될 가능성이 생긴다.
‘고기’라는 말은 누가 소유하는가 – 언어의 권리와 상표의 경계
한 가지 흥미로운 문제는, ‘고기’라는 단어 자체를 누가, 어디까지 사용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미국의 몇몇 축산 단체는 “고기(Meat)”라는 단어의 사용 자체를 상표처럼 보호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이는 단순히 식품 종류를 구분하려는 차원을 넘어서, 단어 자체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겠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논리는 단지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은 어떤 단어에 반응하는가’를 중심으로 판단된다. 만약 ‘고기’라는 단어가 오직 동물성 식품만을 가리켜야 한다고 정의된다면, 언어의 상업적 독점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는 단어 하나가 가진 표현의 자유와 시장 질서 사이에서 복잡한 경계선을 만드는 사례다.
한편, 대체육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은 자사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고기라는 단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콩단백 조합 조직’이라는 표현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이지 않고, 맛의 직관적인 전달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제품명이 ‘버거’, ‘너겟’, ‘스테이크’ 같은
고기 연상 단어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법적으로는 회색지대에 해당한다.
결국 ‘고기’라는 단어 하나를 놓고 전통 산업과 대체 식품 산업, 그리고 소비자 권리가 교차 충돌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단어 사용의 권리’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누구의 언어가 시장을 지배할 것인가. 이는 앞으로의 식문화 갈등이
‘음식’ 그 자체보다 ‘이름’으로 먼저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이름 하나가 바꾸는 시장의 판도
대체육은 이제 단순한 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고기의 대체물이기도 하지만, ‘고기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사회적 실험이기도 하다. 이름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이 논란은 단순히 언어를 정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소비자의 인식 구조, 산업의 성장 방식, 그리고 식문화의 방향성을 함께 결정짓는 과정이다. 앞으로 ‘고기’라는 단어가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에 따라 대체육 시장의 성장 속도, 소비자의 수용성, 그리고 법적 경계가 모두 달라질 것이다. 이제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인식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육이 소수 취향의 식재료에서 벗어나 하나의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지금, 그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해내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명확한 언어는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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